가투소 감독 선임으로 본 이탈리아 축구대표팀의 변화와 재도약 전략

2006년 월드컵 우승 주역 가투소가 위기의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 후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링기오’의 리더십이 이탈리아 축구 재건의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축구 팬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 결승전에서 지단의 박치기 사건 이후, 승부차기 끝에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린 이탈리아 선수들의 모습을. 그 중심에는 ‘링기오(Ringhio)’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불굴의 투지를 보여준 제나로 가투소가 있었다.

그로부터 19년이 지난 지금, 가투소가 다시 이탈리아 축구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지난 6월 16일, 이탈리아축구협회는 공식적으로 가투소를 새로운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월드컵 2연속 본선 진출 실패라는 치욕에서 벗어나기 위한 절체절명의 선택이었다.


스팔레티의 실패와 가투소 선임 배경

이탈리아의 현실은 참담했다. 지난 6월 7일, 2026 북중미 월드컵 유럽 예선 첫 경기에서 노르웨이에게 0-3으로 완패를 당했다. 홀란드가 이끄는 노르웨이는 이탈리아를 경기력, 체력, 전술 모든 면에서 압도했다. 이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이탈리아 축구 팬들에게 깊은 충격을 안겨준 ‘오슬로 참사’였다.

루치아노 스팔레티 감독은 2023년 8월에 취임해 불과 2년도 안 된 시점에서 경질되었다. 애초 계약은 2026년까지였지만, 예선 첫 경기의 참담한 결과로 인해 축구협회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현재 예선 I조에서 노르웨이가 4전 전승으로 1위를 달리고 있는 반면, 이탈리아는 2경기에서 1승 1패로 승점 3점에 그쳐 3위에 머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탈리아가 최근 플레이오프에서 두 차례 연속 탈락했다는 점이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스웨덴에게,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북마케도니아에게 막혔다. 특히 북마케도니아전은 ‘팔레르모 참사’로 불리며, 월드컵 본선 경험이 없는 팀에게 패배한 충격적인 결과였다.


가투소, 그가 누구인가

1978년생인 가투소는 올해 47세다. 선수 시절 그는 AC 밀란에서 ‘밀란 제너레이션 2기’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며 총 10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의 별명 ‘링기오’는 ‘으르렁거리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로, 경기장에서 보여준 강인한 투지와 끝없는 활동량에서 비롯되었다.

가투소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역시 2006년 독일 월드컵이었다. 중원에서 수비의 벽 역할을 하며 이탈리아의 네 번째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이탈리아 대표로 73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했는데, 골보다는 상대팀 공격을 차단하고 동료들이 플레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AC 밀란에서 안드레아 피를로, 클라렌스 세도르프와 함께 만든 중원 트리오는 축구사에 길이 남을 명조합이었다. 가투소가 더러운 일을 맡아 상대를 압박하고 공을 뺏으면, 피를로가 게임을 조율하고 세도르프가 창조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구조였다. 이 조합은 2003년과 2007년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어졌다.


감독으로서의 가투소, 명과 암

선수 시절의 화려한 커리어와 달리 감독으로서의 가투소는 아직 증명해야 할 것이 많다. 2013년 FC 시옹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한 이후 팔레르모, 크레타, 피사, AC 밀란, 나폴리, 피오렌티나, 발렌시아, 마르세유, 하이두크 스플리트 등 다양한 팀을 지휘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팀에서 짧은 재임 기간을 보냈다. 특히 피오렌티나에서는 구단과의 마찰로 부임 3주 만에 공식경기도 치르지 못하고 경질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크로아티아의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43경기 20승 14무 9패를 기록하며 리그 3위로 시즌을 마쳤다.

그럼에도 가투소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의 리더십과 동기부여 능력 때문이다. AC 밀란 감독 시절에는 팀을 5위로 끌어올리며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켰고, 나폴리에서는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선수들에게 강한 정신력과 투지를 심어주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현재 이탈리아가 처한 현실

이탈리아 축구는 지금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를 겪고 있다. 한때 월드컵 4회 우승, 유로 2회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축구를 지배했던 팀이 이제는 월드컵 본선에도 올라가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2010년대부터 시작된 침체는 10년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다.

가끔씩 희망의 불빛이 보이기도 했다. 2020년 유럽 챔피언십(유로 2020) 우승이 대표적이다.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 하에서 37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53년 만에 유로컵 트로피를 들어올렸을 때는 이탈리아 축구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유로 우승 이후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예선에서 북마케도니아에게 덜미를 잡히며 2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유로 우승은 회광반조에 불과했던 것이다. 더욱이 올해 유로 2024에서는 16강에서 스위스에게 0-2로 완패하며 조기 탈락했고, 이어진 월드컵 예선 첫 경기에서 또다시 참패를 당했다.


가투소의 임무와 기대효과

가브리엘레 그라비나 이탈리아축구협회 회장은 가투소 선임 발표에서 “가투소 감독은 이탈리아 축구의 상징이며, 대표팀 유니폼은 그에게 제2의 피부와 같다”고 표현했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가투소는 이탈리아 축구의 정체성을 체현하는 인물이자, 선수들에게 자부심을 불어넣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도자 중 하나다.

그의 첫 번째 임무는 현재 예선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다. 노르웨이가 선두를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조 1위를 차지해 직행 티켓을 따내거나, 최소한 조 2위로 플레이오프 진출권이라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최근 플레이오프에서 두 번 연속 고배를 마신 아픈 기억이 있어 가급적 조 1위로 올라가야 한다.

두 번째는 팀의 정신력 재건이다. 연이은 실패로 자신감을 잃은 선수들에게 다시 한번 이탈리아 유니폼을 입는다는 자부심을 심어줘야 한다. 가투소는 최근 인터뷰에서 “우리는 한 가족이 되어야 한다. 기술과 전술은 그 다음이다. 이탈리아 유니폼은 무게가 있지만,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선수 시절과는 다른 모습

흥미롭게도 감독이 된 가투소는 선수 시절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수 시절 강렬한 투지와 열정으로 유명했던 그는 이제 한층 차분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웃음을 띠며 “선수 시절 내 이미지가 아직도 남아 있다. 많이 뛰고 소리쳤지…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지금 내 팀에 나 같은 선수는 어울리지 않을 거다”라고 농담 섞어 말했다.

이는 가투소가 현대 축구의 변화를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처럼 단순히 투지와 정신력만으로는 승부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전술적 이해도, 데이터 분석, 선수 관리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필요하다. 가투소도 이를 인식하고 있으며, AC 밀란과 나폴리에서 보여준 것처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탈리아 축구 재건의 마지막 기회?

가투소의 선임은 어쩌면 이탈리아 축구 재건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2026년 월드컵부터는 출전팀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확대되지만, 그럼에도 조 1위를 차지하지 못하면 플레이오프라는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한다. 이탈리아로서는 더 이상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

다행히 가투소는 연봉 200만 유로로 2026년 월드컵까지 팀을 이끌 예정이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 만큼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팀을 재건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첫 공식 경기는 9월 6일 에스토니아전이 될 예정이다.


마치며

이탈리아 축구 팬들은 가투소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선수 시절 보여준 불굴의 정신력과 우승 경험, 그리고 이탈리아 축구에 대한 깊은 애정이 침체된 대표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물론 감독으로서는 아직 증명해야 할 것이 많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자국의 영웅을 부른 이탈리아의 선택이 옳았는지는 앞으로의 경기가 보여줄 것이다. 2006년 월드컵에서 보여준 기적을 다시 한번 만들어낼 수 있을까? ‘링기오’ 가투소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