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약 산업의 리쇼어링은 팬데믹 이후 공급망 재편과 기술 변화 속에서 제조업 구조 전환을 모색하는 장기 전략이다.
미국 제약 산업은 팬데믹 이후 해외 의존 공급망의 리스크를 절감하고 국내 제조 기반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환 중이다. 다국적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 발표가 이어지는 가운데, 실제 건설과 운영은 인프라, 인력, 정책 등 복합 과제를 동반하며 진행되고 있다. 고령화로 인한 수요 증대, 고부가가치 제품의 안정적 생산, 지역별 제조 인프라 확장 등이 핵심 키워드로 작용하는 이 흐름은 단순한 유턴이 아닌 산업 구조의 근본적 전환을 의미한다.
팬데믹 이후 리스크 인식이 강화된 공급망 구조
미국 제약 산업의 리쇼어링은 단기 정책이 아니라 구조적 필요에서 비롯되었다. 팬데믹을 통해 드러난 해외 원료 의존 문제는 제약 기업들로 하여금 공급망 리스크를 재평가하게 만들었다. 특히 API(주요 화학 원료)의 생산이 중국, 인도, 유럽에 집중된 상황에서 미국 내 생산 기반 강화는 전략적 선택으로 떠올랐다.
일라이 릴리의 CEO 데이비드 릭스는 이 움직임을 “무역 전쟁이 아닌 공급망 자율 대응”이라 정의했다. 이러한 입장은 단순한 보호무역이 아닌, 글로벌 체계 내에서의 지역화 전략 강화로 이해될 수 있다. 단일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생산 기지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다.
고령화 시대가 촉진하는 장기 수요 확대
의료 수요 측면에서도 리쇼어링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암, 당뇨, 신경계 질환 등 만성질환 중심의 고가 의약품 수요가 급증하는 중이다. 이에 따라 품질관리와 공급안정성이 중시되는 고급 제약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
미국 제약사들은 이 같은 고정 수요를 감안해 암 치료제, 희귀질환 치료제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단기적 비용보다는 장기적 기술 축적과 생산 안정성을 우선하는 기조가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투자 확대와 현실적 장벽의 공존
존슨앤드존슨, 화이자, 일라이 릴리 등 주요 기업들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신규 공장 투자를 발표했으나, 실제 착공과 생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수년 전부터 계획된 사항이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등장 가능성과 정책 기조 변화로 인해 발표 시점이 앞당겨졌다는 분석도 있다.
공장 건설에는 평균 3~5년의 계획 및 허가 과정이 필요하며, 최근 급등한 건축 자재 가격, 이민 규제로 인한 노동력 부족, 고숙련 기술 인력 수급 문제 등 다양한 현실적 제약이 병존하고 있다. 미국 내 자재 비용은 팬데믹 이전 대비 약 45% 상승해, 설비 투자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역별 생산 인프라 재편 움직임
전통적으로 제약 산업의 중심은 보스턴, 뉴저지, 노스캐롤라이나의 리서치 트라이앵글 등이었지만, 최근에는 중서부 및 남부 지역도 새로운 산업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디애나주의 인디애나폴리스는 일라이 릴리의 집중 투자를 통해 차세대 허브로 주목받고 있다.
지방 정부의 세금 감면, 부지 제공, 교육 인프라 확대 등 다양한 유인책이 이 같은 변화를 견인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비용 절감 외에도 고급 기술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교육 및 산업 생태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도시 선택에는 전략적 판단이 필수적이다.
기술 변화와 CDMO 연계 과제
로봇 자동화와 인공지능 기술의 도입은 고급 생산설비의 효율을 높이고 있으나, 오히려 고도화된 기술 역량을 지닌 인력이 더 많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중소 제약사나 CDMO(위탁개발생산업체)의 경우 자본력과 기술 대응 여력이 제한되어 있어, 산업 생태계의 균형적 성장을 위해 별도 지원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한 설비 이전이 아니라, 전체 공급망 재편과 고급 기술 내재화, 다양한 지역 간 협력 체계 형성이 향후 리쇼어링 성공의 핵심 요소가 된다.
제약 제조 리쇼어링이 지닌 구조적 의미
미국 제약 산업의 리쇼어링 붐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글로벌 구조 변화 속에서의 지속 가능한 생산 전략 구축이다. 생산 거점의 분산, 기술 중심의 제조 공정 변화, 고령화에 따른 고정 수요 확대 등 복합 요인이 맞물려 전개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복귀 여부, 인플레이션과 인건비 상승, 환경 규제 등의 변수도 향후 행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제조업 전반의 재건 흐름은 기존 생산 중심 국가들과의 경쟁뿐 아니라, 글로벌 공급 체계의 재조정이라는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
미국 제약 산업 재편, 지속 가능한 공급망 확보가 관건
미국 내 제약 리쇼어링은 단순한 유턴이 아닌 고위험 분산과 기술 내재화 기반의 구조 전환 전략이다. 지역 간 인프라 격차 해소, 고숙련 인력 확보, 자동화 기술의 내재화 등이 성공 여부를 좌우할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