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당의 고용정책이 불러올 유연근무 붕괴 우려

영국 노동당의 고용법 개정안이 유통업계에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커리즈 CEO를 포함한 업계 리더들은 보장근로시간 도입 등이 유연근무를 제한하고 30만 개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근로자 권리와 산업 지속성의 균형점 찾기가 관건이다.

2025년 6월 현재, 영국에서 진행 중인 고용법 개정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경고가 업계 전반에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유통업계 리더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진행 중인 고용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

영국 노동당 정부가 추진하는 고용권리법(Employment Rights Bill)이 2025년 말 왕실 재가를 받을 예정이다. 이 법안의 핵심은 근로자의 권리 강화에 있지만, 산업계에서는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보장근로시간(Guaranteed Minimum Hours, GMH)’ 제도다. 이 제도는 영시간 계약(Zero-hour contracts) 근로자들에게 과거 근무 패턴을 기준으로 한 최소 보장 시간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표면적으로는 근로자의 소득 안정성을 높이는 정책이지만, 시즌성이 강한 산업에서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커리즈 CEO가 제기한 현실적 우려사항

영국 가전 유통업체 커리즈(Currys)의 CEO 알렉스 볼독(Alex Baldock)은 2025년 1월 “제안된 개혁이 동료들에게 중요한 유연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볼독 CEO의 주요 우려사항은 다음과 같다:

  • 채용 위험성 증가: 고용 자체가 더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 될 수 있다
  • 성장 저해: 좋은 의도의 고용법 변화가 오히려 기업의 고용 창출과 성장을 막을 수 있다
  • 유연성 감소: 근로자와 고용주 모두에게 중요한 유연성이 손상될 가능성

그는 “성장을 촉진하기보다는 이러한 고용 조치들이 동료들을 고용하는 것을 더 어렵고, 위험하며, 비용이 많이 들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미 시작된 비용 압박과 그 영향

현실적인 비용 증가도 문제가 되고 있다. 커리즈의 경우 국민보험료(National Insurance) 증세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4월부터 3,200만 파운드의 추가 세금 부담을 지게 된다.

이러한 비용 증가는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단시간 근무자의 고용 비용이 하루아침에 상당히 증가한 상황에서, 추가적인 규제 강화는 기업들에게 이중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볼독 CEO는 이에 대해 현실적인 우려를 표명했다. 정부의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실제 결과는 의도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전반의 고용 축소 전망

2025년 2월, 테스코, 세인즈버리, 아스다를 포함한 영국 주요 슈퍼마켓들이 참여한 소매업무동맹(Retail Jobs Alliance)은 향후 3년 내 최소 30만 개의 소매업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전망이 특히 우려스러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청년층 취업 기회 감소: 소매업과 서비스업은 전통적으로 청년층과 경력단절 여성들의 주요 취업 통로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기회가 줄어든다면 사회적 파급효과가 클 수 있다.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 업계는 예산 변화로 인해 70억 파운드의 추가 비용 부담을 예상하고 있다.

볼독 CEO는 이런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정부 목표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산업이 바로 소매와 서비스 분야”라고 강조했다.


유럽과 한국의 유연근무 접근법

비슷한 정책을 도입한 다른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 보장근로시간제 도입 후 일부 예외 업종에 적용 유예 조치를 마련했다. 실제 현장의 필요성을 인정한 결과다.

덴마크: 기업별 자율적 유연근무 동의 모델을 통해 제도를 연착륙시켰다. 일방적 규제보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접근을 택했다.

한국: 시간선택제 근로 지원 제도를 운영하며, 유통·의료·교육 등 현장 직군의 유연성 필요를 제도 안에서 보완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유연근무제 도입 기업에 자금 지원과 근태관리 자동화시스템 구축을 지원하여 점진적 정착을 도모하고 있다.


정책 조정 가능성과 업계의 기대

다행히 영국 정부도 업계의 우려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지는 않다. 볼독 CEO는 2024년 7월 노동당의 수정된 근로자 권리 계획에 대해 “격려적”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정부가 견습기간(probationary periods) 유지 방침을 명확히 했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제안에 대해 협의 과정을 거치겠다고 약속한 부분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볼독 CEO는 “우리는 어떤 성향의 정부든 협력하는 것을 좋아하며, 이러한 제안들에 대한 협의 기간 동안 확실히 그렇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 특성을 고려한 균형점 찾기

현재 상황을 종합해보면, 근로자 권리 강화와 산업 현실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핵심이다.

소매업과 외식업은 단순한 소비산업을 넘어서, 다양한 계층에게 현실적인 고용 기회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 청년층의 첫 취업 경로
  •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 기회
  • 재취업 희망자들의 실질적 선택지

이러한 기능이 위축된다면, 결과적으로는 정부가 추구하는 고용 안정성 목표와도 상충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고용 생태계를 위한 제언

업계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무조건적인 규제 강화보다는 산업별 특성을 반영한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볼독 CEO의 지적처럼, 정부의 인프라 투자나 산업별 맞춤 성장 전략은 긍정적인 방향이다. 문제는 이런 성장 동력을 살리면서도 근로자 보호를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도 일부 정책에 대해 재검토 방침을 밝히며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결론: 유연성이 지속가능성의 열쇠

영국의 가전 유통업체 커리즈 CEO의 경고는 단순한 기업의 불만이 아니라, 고용 생태계 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근로자의 권리 보장과 산업의 지속 가능성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둘 다 달성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을 찾는 것이 진정한 정책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2025년 말 예상되는 법안 통과를 앞두고, 지금이야말로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실질적인 해답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유연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근로자를 보호하는 방법, 그것이 영국 고용정책이 풀어야 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