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AI 기업의 미국 반도체 규제 우회 전략, ‘스니커넷’이란 무엇인가

중국 AI 기업들이 미국 반도체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물리적 데이터 전송 방식인 ‘스니커넷’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데이터센터를 거점으로 AI 모델을 개발하는 이 방식은 기술 제재의 한계를 보여주며 미중 AI 패권 경쟁의 새로운 국면을 열고 있다.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분야의 경쟁은 단순한 산업 영역을 넘어 국가 안보와 경제 주도권을 결정하는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미국은 중국의 AI 기술 발전을 견제하기 위해 반도체 수출 규제를 강화했지만, 중국 기업들은 예상 밖의 방식으로 이러한 제재를 우회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스니커넷(Sneakernet)’ 전략이다.


반도체 규제로 촉발된 기술 우회 전쟁

2022년 10월 바이든 정부의 첫 수출 통제 이후 지속된 중국의 우회 수입 전략을 정면으로 차단하려는 시도다. 미국은 중국 AI 기업에 대한 반도체 수출 규제를 본격화하며 AI 학습·훈련에 필수적인 고성능 그래픽 연산처리장치(GPU)와 반도체 칩의 중국 유입을 차단하려 했다.

미국 정부는 중국 기업의 우회 수입을 막기 위해 최종 구매처를 확인하는 조치를 취했으며, 또한 중국 기업의 해외 자회사의 구입을 막기 위한 조치를 강구하였다. 엔비디아(NVIDIA)와 같은 미국 기업이 생산하는 첨단 칩이 주요 대상이며, 한국, 대만, 말레이시아 등 우방국과 협조해 공급망까지 통제하려 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예상보다 빠르게 대응책을 마련했다. 실제로 중국은 베트남과 멕시코를 통한 우회 수입을 2018년 대비 2배 이상 증가시켰고,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는 AI 반도체 설계기업들이 생산기지를 설립하며 미국의 제재를 우회해왔다.


말레이시아를 통한 우회 경로

중국 엔지니어들이 3월 초 하드디스크가 든 여행 가방을 들고 말레이시아로 입국했다고 최근 보도되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 데이터센터에서 엔비디아 AI 칩이 탑재된 서버를 이용해 AI 모델을 구축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제재가 직접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말레이시아나 중동 국가들의 데이터센터는 스니커넷 전략의 주요 거점이다. 말레이시아 기술무역협회(PIKOM)에 따르면, 2024년 현재 말레이시아는 총용량 504.9메가와트의 54개 데이터센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2021년 대비 두 배에 가까운 규모다.

실제 방식은 다음과 같다:

  • 중국 엔지니어들이 자체 구축한 AI 학습용 데이터를 하드디스크에 담아 해외로 이동
  • 말레이시아 등지의 데이터센터에 데이터를 업로드하고, 미국산 GPU 서버를 활용해 AI 모델을 훈련
  • 완성된 대형 언어모델(LLM)은 다시 하드디스크에 저장해 중국으로 반입

수천 개의 중국 기업들이 현재 말레이시아 데이터센터를 이용하고 있다. 전체 프로세스는 약 6~8주가 소요되며, 엔지니어의 출국 전 모든 준비가 완료돼야 한다.


스니커넷이란 무엇인가

스니커넷(Sneakernet)은 컴퓨터 네트워크를 경유하여 전송하지 않고, 컴퓨터 간에 자기 테이프, 플로피 디스크, 광 디스크, USB 플래시 드라이브, 외장 하드 드라이브 등의 매체를 물리적으로 이동함으로써 전자적 정보를 전송하는 것을 가리키는, 격식을 차리지 않고 사용되는 용어이다.

초창기 컴퓨터 시절, 인터넷 연결이 어려웠던 시기에 사용되던 개념이었지만, 오늘날 고성능 컴퓨팅 회피 수단으로 부활했다. 이 방식은 국제적 제재가 ‘인터넷’ 또는 ‘클라우드’ 기반의 데이터 이동 경로를 차단하는 것에 한정된다는 점을 교묘히 활용한다.

네트워크가 필요 없는 물리적 이동으로 AI 훈련을 수행하므로, 미국 수출 통제의 사각지대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정책 한계와 기술 글로벌화의 역설

미국 정부는 이러한 방식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이 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술이 중국에 유입되지 않도록 중동과 동남아시아 국가 등에 AI 칩 판매를 제한하는 규제를 이달 중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되었다.

그러나 경제적 논리도 무시할 수 없다. 데이터센터를 제공하는 국가들은 이 과정에서 실질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며,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기술 제공 자체를 막기란 어렵다.

중국 AI사업 전문 투자회사인 IBuffett Investment Management의 이사 조 가오는 “말레이시아는 고급 칩을 조달하기 위한 합법적인 목적지로 남아있다”며 “중국 기업은 특정 수량 제한에도 불구하고 현지 채널을 통해 컴퓨팅 파워 리소스에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 패권 경쟁의 방향성

양국 간 기술 경쟁은 AI 인프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에 대응하여 금년도 3,440억 위안의 제3기 반도체 지원기금을 마련하였다. 화웨이, 텐센트, 바이두 등 주요 빅테크는 고성능 AI 칩 설계를 독자적으로 시도 중이며, 자체 클라우드 환경 구축도 병행하고 있다.

딥시크는 고성능 반도체 칩 없이도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통해 제작됐다고 개발사는 밝혔습니다. 중국의 최근 AI 모델 딥시크가 미국의 챗GPT를 능가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기술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미국은 AI 초강대국 전략을 내세우며, 관련 기업의 수출 규제는 물론 동맹국들과의 기술 동맹 재편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2025년 트럼프 재집권시 대중 기술 봉쇄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물리적 회피 전략이 만든 새로운 국면

‘스니커넷’ 사례는 기술 제재가 단순히 기술력만이 아닌 전략과 자원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데이터가 전자적 경로만을 통해 이동한다고 가정하던 국제 제도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도 드러났다.

중국은 이미 희토류 수출 제한과 엔비디아 반독점 조사 착수로 맞대응에 나섰다. 더불어 자체 AI 칩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중국의 기술 자립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결국 이러한 방식은 향후 미국이 제재 정책을 재설계하고, ‘인적 이동’과 ‘데이터 물리 전송’까지 통제하는 한층 복잡한 규제로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동시에 AI 기술이 세계적으로 분산되고, 비서구 국가들의 기술 자립 노력이 가시화된다는 점에서, 글로벌 기술 패권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AI 산업과 반도체 공급망의 미래

중국 AI 기업들의 스니커넷 활용은 기술 통제의 한계와 국제 정치가 교차하는 접점을 보여준다. 물리적 데이터 이동을 이용한 이 전략은 현재의 디지털 규제를 쉽게 우회하면서, 공급망 및 AI 생태계의 구조적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리서치 회사 IDC는 2025년 말까지 컴퓨팅 파워에 대한 전 세계 수요가 2023년의 10배 수준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측했으며, 이 중 40% 이상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AI 산업은 본질적으로 글로벌 협업과 자원이 필수적인 영역이며, 이를 둘러싼 경쟁은 단순한 제재만으로는 통제되지 않는다. 스니커넷은 그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향후 국제 기술 질서 논의에서 주요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기술의 경계는 물리적 국경을 넘나들며, 규제와 우회가 반복되는 새로운 게임의 시대가 열렸다. 이 변화 속에서 각국은 기술 자립과 국제 협력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