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긴장 고조와 연준의 4차례 연속 금리 동결로 달러가 다시 안전자산으로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관세 정책과 각국 통화정책의 엇갈린 행보가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을 키우는 가운데, 투자자들은 위험 회피 심리로 달러를 선택하고 있다.
2025년 6월, 국제 금융시장이 다시 한번 요동치고 있다.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소식이 전해지면서 글로벌 시장 참여자들은 위험 회피 심리로 돌아서고 있고, 그 중심에는 여전히 ‘안전자산’ 달러가 자리잡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될 때마다 찾는 피난처, 미국 달러의 독특한 지위가 다시 한번 증명되는 시점이다.
중동 위기가 다시 불러온 달러 강세
최근 이스라엘과 이란 간 군사 충돌이 장기화되면서 글로벌 시장은 중동 지역의 확대 갈등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이 분쟁에 직접 개입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투자자들은 다시 한번 달러를 선택했다.
6월 2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 대비 18.7원 오른 1384.3원에 마감했다. 하루 사이 20원 가까이 급등한 것이다. 이는 달러인덱스가 주간 기준으로 약 0.8% 상승해 2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 폭을 기록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현상이 단순히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시아 통화 전반이 약세를 보이면서 위험 회피 심리가 전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투자자들이 불확실성 앞에서 가장 믿을 만한 자산으로 여전히 달러를 꼽고 있다는 방증이다.
연준의 4차례 연속 금리 동결, 그 이유는?
달러 강세를 더욱 뒷받침하는 것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 기조다. 연준은 2025년 1월과 3월, 5월에 이어 6월까지 네 번 연속으로 금리인하를 유보하며 기준금리를 4.25~4.5%로 유지하고 있다.
파월 연준 의장은 최근 ‘신속한 금리인하 불필요. 당분간은 관망의 자세가 적절’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이은 금리인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관리와 경제 안정을 우선시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연준이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을 주요 변수로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월 의장은 “관세가 경제 및 인플레이션에 미칠 영향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으나 그 영향의 크기나 기간은 실제 결정된 정책에 따라 달라진다”며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실제로 연준이 선호하는 물가 지표인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 상승률은 작년 동월 대비 2.6%로, 여전히 연준의 목표치(2%)와는 거리가 먼 수준이다. 성급한 금리 인하보다는 인플레이션을 확실히 잡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트럼프 관세 정책이 만든 새로운 변수
2025년 들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글로벌 경제의 가장 큰 불확실성 요인으로 부상했다. 4월 2일 발표된 상호관세 정책에 따르면 전 세계 모든 국가에 기본 10% 관세가 부과되고, 한국을 포함한 특정 국가들에는 추가 관세가 적용된다.
한국의 경우 기본 10%에 개별 16%를 더해 총 26%의 관세가 적용되기로 결정됐다. 이는 미국 측이 산정한 한국의 대미 무역장벽이 약 50% 수준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IMF는 트럼프의 보편 관세 부과 등으로 인해 세계경제가 2025년에 0.8%, 2026년에 1.3% 각각 감소할 것이며, 미국 GDP도 2025년에 약 1.0%에 이어 2026년 약 1.6%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불확실성이 달러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 무역 전쟁의 중심에 있는 미국이지만, 동시에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지위는 여전히 공고하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의 엇갈린 행보
미국이 금리 동결을 유지하는 가운데, 다른 주요국들의 통화정책은 제각각이다. 영국중앙은행(BoE)은 기준금리 동결을 발표하며 고물가 지속과 국제 불확실성을 그 이유로 제시했다.
반면 스위스국립은행(SNB)은 예고된 대로 금리 인하 조치를 단행했지만, 오히려 시장에서는 프랑이 강세를 보이는 독특한 반응이 나타났다. 노르웨이의 중앙은행은 시장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하기도 했다.
이처럼 각국의 통화정책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기조를 유지하는 미국 달러의 매력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통화시장에는 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달러는 비교적 강세를 보이며 안전자산으로서의 입지를 다시 굳히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과 에너지 안보의 그림자
중동 긴장의 핵심에는 에너지 공급 차질에 대한 우려가 자리잡고 있다. 이란 의회가 중동 에너지 수송의 핵심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의결했다는 소식은 글로벌 시장을 더욱 긴장시켰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원유 수입량 50%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봉쇄 현실화 시 ‘수입 물가 상승→무역수지 적자→통화 약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원화나 위안화 같은 아시아 통화들에게 직접적인 약세 재료가 되고 있다.
유가도 급등해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배럴당 75달러를 넘어 전장보다 10% 넘게 뛰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이는 다시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선택을 제약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
암호화폐 시장마저 흔든 지정학적 리스크
흥미롭게도 이번 중동 위기는 전통적인 안전자산뿐만 아니라 암호화폐 시장에도 충격을 주었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급락하면서 일시적으로 9.9만 달러선도 붕괴됐다.
이번 하락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암호화폐 시장에도 실시간으로 영향을 미친 대표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 특히 BTC가 일시적으로 ‘디지털 안전자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급락한 점이 주목된다.
이는 위기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여전히 전통적인 안전자산인 달러, 금, 미국 국채 등을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전자산인 금 가격도 올라 KRX 금시장에서 오늘 1㎏짜리 금 현물은 전날보다 2% 넘게 오른 1g당 15만 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복합적 영향
한국은 이번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최대 수출국 중 하나로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은 한국의 수출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JP모건에서는 관세 조치의 영향을 반영하여 한국의 2025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2%에서 0.3%포인트 하향 조정한 0.9%로 낮추어 제시했다. 이는 상당히 충격적인 수준이다.
환율 측면에서도 부담이 크다. 대선 이후 원화 자산 선호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외국인 자금의 국내 증시 유입이 환율 하락을 자극할 수 있다고 기대했지만, 중동 갈등으로 재차 불거진 지정학적 리스크는 원화 강세를 제약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5월 29일 기준금리를 2.75%에서 2.50%로 하향 조정했지만, 미국의 높은 금리가 유지되면서 한미 금리차가 확대되는 상황이다. 이는 앞으로도 원화 약세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연말까지의 전망과 투자 전략
프랑스계 투자은행 BNP파리바는 올해 기준금리가 연말까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또한 10월 중 열릴 예정인 FOMC 회의를 ‘라이브 미팅’으로 설정하며, 본격적인 정책 변화는 4분기에 논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당분간 달러 강세 기조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달러가 최근 강세를 보이는 가장 큰 요인은 중동에서 발생한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글로벌 통화정책의 불균형 때문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몇 가지 시나리오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첫째, 중동 분쟁이 단기에 마무리될 경우 위험 회피 심리가 완화되면서 달러 강세도 한풀 꺾일 수 있다. 둘째, 분쟁이 장기화되거나 확산될 경우 달러 강세는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실제로 인플레이션을 자극한다면 연준의 금리 인하는 더욱 늦춰질 수 있다. 이 경우 달러 강세는 구조적으로 지속될 수도 있다.
변화하는 글로벌 금융 질서의 신호
이번 사태가 보여주는 것은 여전히 미국 달러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5년은 미국 경제의 상대적인 강세와 기축통화인 달러화의 지위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석유 거래에서 미국 달러화(페트로 달러) 대신 중국 위안화(페트로 위안)의 사용을 증가시키고, 대안적인 결제체제를 작동시키며 미국 달러화에 대한 의존을 감소시키려는 시도가 계속될 것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현재 시점에서는 ‘안전자산으로서의 달러’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으며, 이는 투자자들이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전략에서 핵심 열쇠가 되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각국의 엇갈린 통화정책, 그리고 무역 분쟁의 확산까지. 2025년 하반기 글로벌 경제는 여러 복합적 요인들이 얽혀있는 복잡한 상황이다. 이런 때일수록 투자자들은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한 포트폴리오 구성과 리스크 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기적인 시장 변동성에 흔들리지 않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달러 강세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이런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