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화웨이·SMIC 수출 통제 강화…중국 AI 반도체 개발에 타격 우려
2025년 6월, 타이완 정부가 AI 반도체 핵심 기업인 화웨이(Huawei)와 SMIC(중국반도체제조국, Semiconductor Manufacturing International Corporation)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를 강화했다. 타이완의 국제무역관리국이 발표한 이번 조치는 두 기업과 그 자회사를 전략적 첨단기술 수출 통제 대상 목록에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타이완 내 업체들은 향후 이들 기업에 관련 기술과 장비를 수출하기 위해 반드시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본 조치는 단순한 무역 규제를 넘어, 중국의 AI 반도체 자립 시도와 기술 독립 전략에 실질적인 제약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 기술 산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AI 반도체 개발을 위한 공급망 차단
중국은 최근 몇 년간 AI 반도체 자급자족에 박차를 가해왔다. 화웨이와 SMIC는 그 중심에 있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각각 AI 칩 설계와 제조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은 설계뿐 아니라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고순도 소재, 고정밀 계측 장비 같은 하드웨어 기반 기술의 해외 의존도가 매우 높다.
타이완은 전 세계 반도체 제조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국가로, 특수 반도체 제조 장비와 원재료 분야에서 글로벌 공급망 내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이번 통제 조치로 인해 화웨이와 SMIC는 타이완에서 확보해오던 공정 미세화 장비 및 공장 건설 기술, 소재의 접근이 제한될 전망이다.
실제로 블룸버그는 이러한 수출 규제 조치가 중국의 AI 칩 생산 능력을 실질적으로 후퇴시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정치와 기술, 통제의 경계에서
타이완 정부는 수출 통제 대상 목록을 갱신하면서 “무기 확산 방지 및 국가 안보 차원에서의 대응”을 이번 결정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새로 편입된 601개 기업에는 중국 외에도 러시아, 이란, 파키스탄, 미얀마 등과 관련된 업체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보호 장치를 넘어, 지정학적 긴장과 국가 간 안보 전략이 기술 수출 규제 정책과 맞물려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편 미국 역시 유사한 전략을 구사해왔다. 미국 상무부는 최근 몇 년간 엔비디아, 인텔 등의 반도체 관련 기술이 중국으로 이전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 화웨이와 SMIC를 '엔티티 리스트(Entity List)'에 등재한 바 있다. 타이완의 이번 조치는 미국의 대중 기술 견제 전략과 발맞춘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타이완 반도체 산업의 국제적 위상
타이완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TSMC의 본거지다. TSMC는 고성능 반도체 칩을 위탁 생산할 수 있는 전 세계 유일한 기업 중 하나로, 애플, 엔비디아, AMD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의존하고 있는 생산 플랫폼을 제공한다.
화웨이와 SMIC는 미국 및 유럽 규제로 인해 TSMC와의 거래가 제한된 상황이지만, 타이완 내 중소 장비 공급업체들이 여전히 일부 기술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번 수출 통제는 이러한 경로를 차단함으로써 중국 반도체 산업 전반에 압박을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기술 자립 목표에 미치는 영향
중국은 '차이나 칩(China Chip)'이라는 자국 반도체 굴기 전략을 통해 설계부터 생산까지 일관된 첨단 기술 생태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AI 칩 시장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지원 아래 급성장 중이며, 스마트폰, 자율주행차, 데이터센터, 군용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은 단일 국가의 지원만으로는 완결성을 갖추기 어려운 글로벌 협업 기반의 산업이다. 이번 통제 조치는 글로벌 공급망의 불균형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타이완의 강화된 통제는 단순한 기준 강화가 아니라, 사실상 특정 기업에 대한 기술 차단 조치를 의미하며, 중국의 AI 칩 독립 전략에 장애물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 경쟁의 새로운 전환점
이번 타이완의 수출 규제 조치는 기술 산업이 더 이상 경제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안보, 외교, 통상 전략이 결합된 기술 통제 결정은 세계 반도체 산업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향후 유럽, 일본, 한국 등의 반도체 정책에도 연쇄적 파급 효과가 예상되며, 글로벌 경쟁 구도는 더욱 다층화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반도체 관련 국산화 정책을 가속화할 것이며, 타이완은 글로벌 기술 동맹 강화에 집중할 전망이다.
기술 안보가 주도하는 신냉전 구도
타이완의 화웨이·SMIC 수출 통제는 기술 주권, 국가 안보, 전략적 긴장이라는 복합적인 변화를 배경으로 한다. AI 반도체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은 단순한 시장 경쟁을 넘어서, 기술을 통한 영향력 확대의 수단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을 비롯한 기술 강국들에도 새로운 선택과 대응 전략을 요구하는 지점이다. 기술은 이제 안보이고, 국력이며, 외교의 핵심 축으로 작동하고 있다.